열악한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7년차 이하의 '주니어급' 건축설계인력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건축업황이 펴지지 못한 상황 속에서 주요 건축사사무소들이 장기간 비용 절감 기조를 유지하면서 해당 증상이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설계사의 '허리'의 역할을 하는 대리와 과장급 사원들의 이탈이 자칫 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한 대형 건축사사무소의 올해 자진 퇴사자 수가 예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들 중 3~5년차 사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반절에 달했다. 서울의 다른 중견 건축사사무소는 5년차 이하 건축직 사원들의 누적 퇴사건수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중견 건축사사무소의 임원은 "설계본부의 부담을 덜기 위해 경력 채용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지만 지원율은 바닥 수준"이며 "허리급의 이탈 속도는 빨라지는데 반해 재취업이 제한적인 중간관리직은 회사를 떠나지 않다 보니 사내 인력구조가 점점 '역피라미드'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설계사들은 '인력 수급 위기'에 직면했다. 중소 건축사사무소의 관계자는 "5년차 이하 경력직은 평균 근속기간 2년에 못 미치고 있다."며 "민간 프로젝트 미수금 규모가 커지면서 임금을 인상하거나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추가 비용 지출마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전년에 이어 올해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의 여파로 건축업황 악화가 계속 지속되면서 건축사사무소들이 일제히 비상 경영에 돌입하여 5년차 이하의 사원들은 업무 부담이 더욱 커져 이른바 '탈건'을 부추기고 있다. 중소 건축사사무소 과장급 책임은 "많게는 세 사람 몫을 해야 하다 보니 한 달간 밤샘 근무가 10일을 넘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런데도 신규 수주가 메마르면서 성과급이 끊기고 월급이 밀리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다른 중견 건축사사무소의 2년차 사원은 "입사 후 극한 업무강도를 경험한 뒤로 대학 동기들과 탈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급격히 늘었다."며 "내년부터는 워라밸이 비교적 잘 지켜지는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런 '탈건' 흐름은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통계 자료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건축연구원이 지난 해 9~10월 건축사사무소 직원 1458명을 대상으로 '건축사사무소 인력수급 및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1/3 에 해당하는 재직자가 설계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응답자의 22.9%가 '연관 분야로 이직'으, 11.2%가 '타 분야로 이직'을 향후 진로로 꼽았다. 또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5%가 '타 분야 대비 열악한 근무 여건'을 이직 고려 사유로 응답했으며, '자격시험응시 제한으로 인한 자격취득 불가'가 17.6%, '미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11.4%로 뒤를 이었다.
건축사사무소의 인력 유입과 이탈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제도(복수선택 가능)로는 '건축설계 대가기준 정상화'가 70%, '건축사 자격시험 응시기준 완화'가 29.8%, '직원 교육체계 마련'이 21.2%, '직원 등급체계 마련'이 19.9% 등으로 조사되었다.
가장 시급한 사내 복지에 대한 질문으로는 '성과급'이 74.6%, '주 4.5일 등 근무시간 단축'이 40.3%, '유연 근무'가 34.8%, '문화생활 복지비'는 21% 등의 순으로 대답하였다.
건축설계업계 관계자는 "인력 의존도가 높은 건축설계 분야에서 핵심 인력이 이탈한다는 것은 건축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실무 인력들이 업무 강도 대비 낮은 임금을 토로하는 만큼 건축사업무 대가 정상화가 처우 개선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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